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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 선배의 일침
- 퇴직 뒤 뭘 할지 미리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내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하느냐’는 생각만 버리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 퇴직자, 자기 돈 넣는 일은 말리고 싶습니다.
- 아침마다 갈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믿음.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숨 막힐 정도는 아닌 무게감 있는 일이면 좋습니다.
- 적당히 즐길 거리에 소소하게 만나 작은 일상을 함께 할 이웃과 친구들이 있으면 좋습니다.
- 퇴직후에도 정형화된 일과 필요
명퇴후 기계기사로 재취업한 A 씨의 사례
건설사의 재무관리를 담당해온 A 씨는 58세에 희망퇴직한 뒤 모 병원 기계기사로 일하며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의 재취업 과정과 인생 2막을 들어보시죠.
새 일의 만족도는?
“재미 있습니다. 이 큰 병원이 내가 일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보람도 있고요.”
인생 별 건가. 아침마다 갈 곳이 있고 그곳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믿음.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숨 막힐 정도는 아닌 무게감.
적당히 즐길 거리에 소소하게 만나 작은 일상을 함께 할 이웃과 친구들.
요즈음 A씨(61)에게 삶은 이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35년간 일한 직장을 떠난 뒤 1년간 ‘리셋’을 거쳐 만들어낸 일상이다.
평일 오전 8시 전에 병원으로 출근해서, 지하 7층 기계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비들의 상태를 점검한다. 냉방기와 보일러 같은 거대 장비가 즐비한 이곳은 냉난방과 냉온수가 병원 곳곳에 핏줄처럼 뻗어나가는 심장 같은 곳이다.
근무시간 내내 계기압과 가동실적을 점검하고 직접 정비를 하기도 한다.
심각한 고장이라면 기기 공급업체에 연락해 수리를 의뢰한다.
동료는 16명. 그를 포함한 10명이 낮시간 기계설비의 유지관리를 맡는다.
6명은 주야간 3교대로 관제실 제어와 모니터링을 담당한다.
취미생활은 하는지?
오후 5시 퇴근 뒤엔 다른 일상이 기다린다.
월수금은 음악연습실에서 색소폰을 불고, 화목은 농장에 가서 작물들을 살핀다.
주말이면 격주 토요일마다 3시간씩 있는 오케스트라 연습을 제외하면 농장에서 지내며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인다.
2022년 9월 시작된 그의 루틴이다.
2021년 9월 희망퇴직한 뒤 새 루틴을 완성하기까지 딱 1년 걸렸다.
퇴직후 바로 재취업했나?
58세의 희망퇴직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택한 그에게 1년 넘는 휴직기간을 줬다.
이 기간 여러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유행 따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여의치 않자 지리산 둘레길 270km를 3주에 걸쳐 걸었다.
은퇴 후 소일거리로 주말농장을 생각하고 집에서 3~4km 떨어진 화훼단지에 땅을 산 것도 이때다.
“순례길 걷는 거야 그때뿐이고 이후 삶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죠. 그보다는 생활의 틀이 필요했어요.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반드시 집에서 나와야겠다고 작정했는데, 처음엔 매일 오전에 헬스장 가고 오후엔 악기 연습실 가서 시간 보내곤 했지요.”
열심히 일해온 세대라 그런 걸까.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차를 탄 나 씨는 퇴직을 생각한 순간, 아무런 계획 없이 하얗게 남겨진 하루 일과가 낯설었다.
휴식을 꿈꿔왔는데 이 불편하고도 불안한 느낌은 뭐지, 나를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재취업 교육을 받았나?
고용노동부 산하 기능전문대학 폴리텍의 ‘신중년 특화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단순히 용접을 배우려 했다. 주말농장에 움막을 하나 짓고 싶은데 직접 용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자격증 5개 취득, 처음엔 모두 떨어져 오기로 공부했다.
그는 현재 가스기능사, 에너지관리기능사, 에너지관리산업기사, 공조냉동기계산업기사, 에너지관리기능장 등 자격증 5개를 갖고 있다.
폴리텍에서 공부한 6개월(2022년 3월~8월)이 그의 변신을 도왔다.
경험자들은 입을 모아 폴리텍의 실습지원 시스템을 칭찬한다.
먼저 3개의 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했지만 에너지관리기능사 하나만 붙었다.
“창피했고 오기가 생기더군요. 아침 8시 전에 학교에 가서 밤 11시에 경비아저씨가 불 끄라고 찾아올 때까지 공부했어요.
그렇게 해서 공조냉동기계 기능사는 떨어졌는데 더 어려운 공조냉동기계 산업기사는 붙었습니다. 나머지 자격증은 병원에 취업한 뒤에 땄지요.”
일과 급여는 어떤가요?
― 작업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십니까?
“희망퇴직을 결정할 때 앞으로 일은 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정형화된 일과가 있어야 되겠더군요. ‘내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하느냐’는 생각만 버리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 처음부터 이 병원에서 일할 생각이었나요?
“전혀요. 하다 보니 알게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지요. 일단 해보지 않고서는 그 다음을 알 수 없습니다. 제 경우 일단 자격증을 갖게 되니 여기저기 지원할 곳들이 보이더군요. 사실 여기 다니면서 대형카드사 빌딩에도 합격했는데 출퇴근에 시간쓰기 싫어서 그냥 여기 있기로 한 거죠. 급여 차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 혹시 급여를 여쭤봐도 됩니까?
“250만 원 정도 됩니다. 친구들이 부러워해요. 은퇴하고 이렇게 재취업하는 게 흔하진 않잖아요. 친구들은 대부분 작년, 올해 은퇴했는데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어요.”
― 친구분들에게 이런 길을 권하지는 않았나요?
“이 과정이 제가 쉬운 것처럼 얘기를 하지만 처음 접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히 문과출신에게는 용어부터 생소해요.”
― 계속 일할 생각인가요?
“이 일은 65세 정도까지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26년부터 기계설비 유자격자 수요가 많아질 거예요.
기계설비법이 개정돼 일정 면적 이상 공동주택이나 건물은 의무적으로 기계설비 유지 관리자를 선임해야 하거든요.
저도 여기서 4~5년 경력을 쌓으면 관리자 등급이 올라가는데, 그럼 지방에서 공장 관리하면서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